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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 갈아끼우며 10대 뉴요커로… 발레 내려두고 R&B 리듬 탔죠”

입력: ‘26-09-28 00:23 / 수정: ‘26-09-28 00:23

뮤지컬 ‘헬스키친’ 앨리역 김수하

팝스타 얼리샤 키스 자전적 뮤지컬
“마음 놓인다”는 키스 말 듣고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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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헬스키친’에서 반항기 가득한 열여덟 살 앨리를 연기하는 김수하는 “오히려 엄마와 선생님 라이자 제인(의 심경)이 이해되는 나이가 됐다”면서 “연출가에게서 그들을 너무 이해하지 말라는 주문도 들었다”며 웃었다. PL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2월까지 김수하(32)는 1990년대 미국 뉴욕에 사는 열아홉 미미였다. 죽음을 곁에 둔 채 하루하루를 처절하게 밀고 나가던 뮤지컬 ‘렌트’의 클럽 댄서. 다섯 달 만에 그는 같은 연대와 도시, 연령대로 돌아왔다. 미국 팝스타 얼리샤 키스(45)의 자전적 뮤지컬인 ‘헬스키친’에서 그가 연기하는 앨리는 이제 막 세상의 문을 여는 열여덟 살. 미미와 전혀 다른 온도를 가진 10대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수하는 “인생의 끝에 있는 미미에게선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나는 희망을, 삶을 막 시작하는 앨리에게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질풍노도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두 배역의 간극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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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팝스타 앨리샤 키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헬스키친’에서 반항기 가득한 열여덟 살 앨리(김수하)는 엄마와 음악적 재능을 키워주는 선생님 라이자 제인, 친구들, 첫사랑 넉과 교류하며 음악과 사랑을 알게 된다. 에스앤코 제공


한때 우범지대였던 뉴욕 맨해튼 헬스키친을 배경으로 한 ‘헬스키친’에서 앨리는 홀로 딸을 키우는 엄마, 음악적 재능을 일깨우는 선생님 라이자 제인, 친구 타이니와 제시카 등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며 음악과 사랑을 알게 된다.

김수하는 반항심 가득한 뉴욕의 10대, 앨리로 보이기 위해 좋아하던 발레부터 내려놓았다고 했다. 상체를 박스처럼 꼿꼿하게 유지하는 발레의 훈련이 앨리의 리듬을 방해할까 봐서다. “분장하고 의상을 입으면 70~80%는 앨리처럼 보이지만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거예요.” 자신만의 무기를 움직임으로 정하고 걸음걸이와 손짓부터 다시 짰다.

음악이 나오면 바로 리듬을 타는 댄서들을 따라 했고, 운전할 때도 1990년대 리듬 앤드 블루스(R&B)를 들었다. 레이백(흑인 특유의 여유 있는 리듬감)은 아프리카계 미국 혼혈 가수 이미셸에게서 배웠다. 이미셸은 극에서 앨리의 친구 타이니를 연기하고 있다. 김수하는 “제 감을 믿지 않고 언니 입을 보면서 노래한다”고 무한신뢰를 보냈다.

힙합과 R&B, 재즈, 팝이 뒤섞인 악보도 난제였다. “작품마다 성대를 갈아 끼운다고들 하는데 이번엔 장면마다 성대를 바꿔야 했다”면서 “하나도 쉬운 곡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R&B 노래를 꾸미는 애드리브도 처음이라 감독진이 잡아준 틀을 수백 번 되풀이했다.

“그 배우를 뽑은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그는 “연습만이 살길”이라는 마음으로 브로드웨이 초연 음반을 달달 외웠다. 연습이 끝나도 남았고, 점심시간엔 김밥을 먹으며, 집에선 층간소음 탓에 주차장 차 안에서 불렀다.

그런데도 유명한 곡이 나올 땐 원곡과 비교될 거라는 부담이 크다. 그래서 자신만의 기준을 잡았다. ‘이프 아이 에인트 갓 유’를 부를 때는 아빠 데이비스와 만드는 장면에 더 신경을 쓰고, ‘뉴욕 찬가’로 불리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를 노래할 땐 어른이 된 앨리가 만드는 무대를 상상하며 노래한다.

키스는 배우들을 한 명씩 불러 자신의 의견을 쓴 노트를 건넸지만 김수하는 부르지 않았다. 내심 서운했지만 첫 공연 뒤 키스가 “마음이 놓인다”는 말을 전해오자 서운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한국 뮤지컬계의 ‘믿고 보는 배우’ 김수하의 출발점은 영국 런던이었다. 2015년 한국 여배우 최초로 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 무대에 앙상블 겸 킴(주연) 커버로 섰고, 도쿄 제국극장과 유럽 투어에선 킴을 맡았다. 2019년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진으로 국내에 데뷔한 뒤 미미(‘렌트’), 에우리디케(‘하데스타운’), 누비아 공주(‘아이다’), 에포닌(‘레미제라블’) 등 결이 전혀 다른 여성들을 오갔다.

마음에 둔 배역을 하나씩 만나며 ‘도장 깨기’를 했던 시간은 서른을 넘기며 달라졌다. “내 것이 아니면 붙잡아도 가고, 내 것이면 싫다고 도망가도 오더라고요.” 요즘 마음은 이렇다. “애틋하게 잘 데리고 있다가 잘 보내주자.”

‘헬스키친’의 앨리는 김수하와 손승연, 박지원이 열연하고 있다. 공연은 오는 11월 8일까지 서울 GS아트센터.

최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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