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거래의 경제학
앨빈 로스 지음/ 이경식 옮김
생각의힘/ 468쪽/ 3만 2000원
미국에서 신부전으로 고통받는 환자는 80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50만명이 투석 치료를 받고 있다. 신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건 9만명 수준이다. 그러나 사후 기증에 따른 이식 수술은 연 2만건에 불과하다. 다행히 한 해 6000명 정도가 자신의 신장을 자발적으로 기증하는데, 환자와의 적합성 여부가 걸림돌이다. 이러다보니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죽을 때까지 신장 이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만약 신장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게 허용한다면 어떨까. 그러나 이런 의견은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인간의 신체를 돈으로 사고파는 행위가 강력한 혐오 감정과 결부되어서다. 암시장이 커질 수 있고,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이처럼 버젓이 존재하지만 논의하기 버거운 시장들이 있다. 성매매도 대표적인 사례다. 전 세계 국가 대부분이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지만, 성을 사고파는 시장은 세계 어디에나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물론 네덜란드처럼 일정한 틀을 정해놓고 합법으로 운영하는 나라들도 있다. 놀랍게도 이들 나라에서 성매매 종사자들의 성병 감염 비율, 강간 등 관련 범죄 비율이 오히려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만으로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긴 어렵다.
매칭 이론과 시장 설계 연구로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앨빈 로스 스탠퍼드 경제학과 교수가 건드리는 지점들이다. 신장 이식, 성매매뿐 아니라 의료조력사망, 임상시험, 백신 개발처럼 인간의 생명과 죽음에 맞닿아 있는 주제들을 다룬다. 도덕과 시장이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따진다.
저자는 우선 시장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자고 제안한다. 시장이 반드시 돈을 주고받는 곳일 필요가 없으며, 희소한 자원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연결해줄지, 어떤 규칙을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도록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아이디어를 낸 ‘신장 교환 메커니즘’이 이런 사례다. 대기자들이 이식하기 적합한 신장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신장을 사실상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금전적 거래가 없었고, 따라서 혐오의 감정도 피할 수 있었다.
책은 도덕과 시장, 자유와 보호, 효율성과 공공의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단순히 찬반 주장만 외치지 않는다. 데이터와 사례, 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민감한 주제를 따져본다. 금지의 이유를 다시 살펴보고, 어떤 선택이 우리에게 이로운지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혐오를 넘어 시장 설계가 관건이다. 저자는 우리가 민감한 시장을 설계할 때 범죄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안전 문제 등은 잘 고려했는지도 살펴야 한다고 덧붙인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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