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 에스앤코 제공
17세 소년 파이와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태평양을 표류한 227일을 그린 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화에 이어 무대까지 장르를 옮기며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았다. 2021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연극은 정교한 퍼펫(인형)과 실감 나는 망망대해를 표현한 무대 연출로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서울 GS아트센터에 상륙한 작품은 여전히 화제를 부르며 순항 중이다. 특히 파이 역의 박정민과 박강현은 러닝타임 내내 무대를 뜨지 않은 채 감정을 끌어올리고 몸은 던지는 밀도 높은 열연으로 찬사를 부른다. 반대로 말하면 배우에게 극한의 체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배우 박강현에게도 하나의 ‘생존기’다. 최근 라운드 인터뷰로 만난 박강현은 이 작품을 “육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굉장한 지구력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연습 초기에는 장면마다 숨이 가빠 호흡을 가다듬기조차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개막한 지 두 달을 훌쩍 넘겨 서울 공연 막바지를 향해 가는 시점에서 그는 “어느 정도의 고통인지 알고 무대에 서니까 그래도 몸이 적응했다”면서 “지금은 어떤 작품이 와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직전에 출연했던 뮤지컬 ‘알라딘’에서 노래와 격한 움직임을 병행했던 경험과 이번 작품을 비교하며 “둘 다 힘들지만 고통의 결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노래를 ‘뱉어야 하는’ 고통과, 음악 없이 오롯이 대사와 움직임으로 버텨야 하는 고통은 전혀 다른 차원의 부담이라는 것이다.
파이가 만드는 두 개의 이야기 중에 ‘첫 번째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연기한다고 했다. 호랑이와 표류하는 환상적인 이야기가 첫 번째, 살아남은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생존 경쟁이 두 번째다. “파이의 경험이 관객에게 처절한 생존이 아니라 ‘실제로 저랬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우주에도 심해에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투성이”라며 “어딘가에서는 호랑이와 표류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고 되물었다.
▲ ‘라이프 오브 파이’ 주연 박강현. 메인스테이 제공
비록 “첫 번째 이야기를 위해 죽을 만큼 애쓰면서 달려” 가도 관객들에게서 현실적인 두 번째 이야기를 더 믿는 듯한 느낌을 받는 날도 있다. 무엇이 진실일까, 무엇을 믿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자체가 작품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그 역시 이 작품을 통해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삶과 선택,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선택하고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좋은 쪽일 거라는 다소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며 “여러 작품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믿음이 조금씩 깎이는데 이 작품으로서 다시 믿음을 굳건히 세울 수 있었다”고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퍼펫을 조종하는 퍼펫티어와 함께 연기하면서 어느 순간 퍼펫만 보이는 것도 “무대 위에 존재하는 무대만의 약속을 믿고 가는” 믿음의 연장선이다.
2015년 뮤지컬 ‘라이어 타임’으로 데뷔한 그는 2017년 ‘팬텀싱어 2’에 출연해 준우승을 거두며 실력을 입증했다. 2018년 뮤지컬 ‘웃는 남자’ 초연에서 주인공을 맡으며 대극장 주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고 2022년에는 ‘하데스타운’으로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했다.
뮤지컬을 주로 해오던 그에게 ‘라이프 오브 파이’는 2017년 출연한 ‘나쁜 자석’ 이후 8년 만에 만난 연극이다. 그를 사랑하는 관객들은 “왠지 파이가 노래를 할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도 하고 “너무 절규를 많이 해 목 상태가 걱정된다”고도 한다. 그 역시 목 관리의 어려움, 공연 후 말을 아껴야 하는 일상까지 감수하고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가 끝나고 다시 노래하려면 회복 기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연극을 포함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뭐든 해보고 싶다”는 그는 “그룹 미라클라스(팬텀싱어 2를 계기로 결성한 팀) 그룹 활동도 준비를 해보려고 한다”고 또 다른 도전을 예고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서울 공연(3월 2일까지) 후 7~15일 부산 드림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의 파이(박강현)과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 에스앤코 제공
최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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