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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중박 찾는 스위스의 거장들

입력: ‘26-11-06 00:51 / 수정: ‘26-11-06 00:51

‘쿤스트하우스 취리히’ 특별전 27일 개막… 오늘 예매 시작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한다”… 스위스 국민화가 최고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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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베니스의 여인 Ⅷ’. 스위스 쿤스트하우스 취리히 제공


유럽 미술의 교두보 역할을 해온 스위스 거장들의 걸작이 한국을 찾는다. 서울신문과 국립중앙박물관, 스위스 쿤스트하우스 취리히는 오는 27일부터 내년 4월 18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모던 아트의 탄생-스위스 쿤스트하우스 취리히 소장품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은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스위스 출신 거장들의 진면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위스 태생 거장들은 스위스를 넘어 유럽 전역을 무대로 활동하며 미술 흐름을 주도했다. 헨리 퓨즐리(1741~1825)와 앙겔리카 카우프만(1741~1807)은 영국에서, 파울 클레(1879~1940)는 독일을 무대로 활동했다. 펠릭스 발로통(1865~1925)과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프랑스를 무대로 활약했다.

그러면서도 특정 유파에 휩쓸리기보다 자신들만의 확고한 예술 언어를 구축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스위스의 ‘국민 화가’로 꼽히는 페르디난트 호들러(1853~1918)는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형태와 선을 사용해 인간 군상과 자연 풍경을 하나의 관념으로 제시하는 형식인 ‘평행주의’를 선보였으며 클레와 자코메티는 각각 ‘기호학적 추상과 색채 이론’, ‘실존주의 조각’ 등 기존의 미술 문법을 파괴한 모습으로 나아갔다.

중립국인 스위스는 역사적으로 유럽 전역의 예술가, 지식인, 작가들에게 도피처이자 창작의 터전이었다. 지리적으로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사이에 위치해 다양한 미술 사조를 흡수하고 발전시켰다. 덕분에 스위스 출생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당대 최고 수준의 국제적인 아방가르드 흐름과 교류하며 독창적인 모더니즘을 꽃피울 수 있었다.

이번 전시에선 스위스 현대미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한 호들러의 작품을 7점이나 만날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형제를 모두 결핵으로 잃은 비극을 겪었던 그는 평생 생명과 죽음, 인간의 근원적인 굴레에 천착했다. 평행주의라고 명명한 그의 독창적인 표현 방식은 작품 속에서 동작을 반복하는 인물, 완벽한 기하학적 대칭을 이루는 배치 등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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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디난트 호들러가 드레퓌스 사건에 영감을 받아 그린 ‘진실’. 스위스 쿤스트하우스 취리히 제공


1903년 작품인 ‘진실’은 그의 평행주의가 극명히 드러난다. 화면 중앙에는 티 없이 환한 빛을 내뿜는 벌거벗은 여인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으며, 그 주변으로는 검은 천을 뒤집어쓴 채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는 여섯 명의 남성이 대칭을 이루며 배치돼 있다. 진실로 의인화된 여인을 마주하지 못하는 이들은 거짓과 위선을 상징한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밤’, ‘낮’과 함께 호들러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미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20세기 추상미술을 관통하는 이 말은 스위스를 대표하는 화가인 클레가 남긴 명언이다. 독일의 바실리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파’를 이끌고, 바우하우스에서 10여 년간 형태와 색채 이론을 가르친 그는 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장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사냥꾼 나무’(1939)는 그가 타계하기 1년 전 완성한 후기 대표작이다. 피부경화증이라는 희귀질환으로 붓을 쥐기조차 어려웠던 상황에서 완성한 이 그림은 젊은 시절의 섬세한 선 대신 굵고 묵직한 기호 같은 선들로 뼈대를 세웠다. 탁한 표면의 질감과 미로 같은 나무 구석에 자리한 상형문자 같은 형태는 마치 고대 동굴 벽화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낭만주의 회화의 선구자 퓨즐리는 현실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꿈과 억압된 욕망 등 보이지 않는 정신적 구조를 캔버스에 담았다. 존 밀턴의 서사시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등 문학은 그에게 큰 영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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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퓨즐리, ‘새벽의 고독’. 스위스 쿤스트하우스 취리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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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트 앙커, ‘난로 의자에 누운 두 소녀’. 스위스 쿤스트하우스 취리히 제공


전시에서 선보이는 ‘새벽의 고독’ 역시 밀턴의 시에서 비롯됐다. 잠들어 있던 목동은 아직 자신의 내면세계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정강이 위에 올린 손을 통해 그의 의식이 천천히 깨어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놓인 순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세계를 동경하는 인간의 마음이 응축된 작품이다. 알베르트 앙커(1831~1910)가 보여주는 고요한 농촌의 평화주의와 소피 토이버-아르프(1889~1943)의 스위스 다다와 같은 급진적 아방가르드가 공존하는 묘한 양면성도 놓치지 말아야 할 감상 포인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성영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퓨즐리의 작품은 낭만주의부터 상징주의, 초현실주의까지 꿈과 환상을 담은 유럽 미술의 한 측면을 잘 보여준다”며 “낭만주의 화가 퓨즐리부터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과 페르디난트 호들러 등 국내에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던 작가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소개했다. 이어 “스위스 쿤스트하우스 취리히는 서유럽 중심부에 위치해 개방적이고 선구적인 시야로 소장품을 구축해 온 곳으로, 이번에 엄선한 출품작들은 유럽 모던 아트의 다양한 모습을 한눈에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고 덧붙였다.

일반 예매는 6일부터 티켓링크, 네이버 예약, 카카오 예약하기를 통해 시작되며, 개막일인 27일부터 12월 3일 관람분까지 우선 예매할 수 있다. 이후 일정도 차례로 오픈된다. 입장료는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 8000원, 어린이 1만 2000원, 유아 및 노인은 1만원이다.

윤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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