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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잃은 AI시대… 인간다운 여백 어디에

입력: ‘26-10-23 00:14 / 수정: ‘26-10-23 00:14

서늘한 대화/정재승 지음/어크로스/432쪽/2만 2000원

AI는 대답의 천재, 질문 주체 아냐
문제 발견·해결하는 이가 전문가

AI에게 일자리 위협 느끼기보다
옆자리 동료로서 역할 고민해야
최종 목표는 ‘AI시대의 인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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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과학과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하는 정재승 카이스트(KAIST) 교수가 강연하는 모습. 그는 ‘인공지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을 놓고 나눈 40개의 서늘한 대화들을 신간에 담았다. 어크로스 제공


‘인공지능(AI)은 우리의 일자리를 없앨까’, ‘20년 후에 유망할 직업은 무엇일까’.

대중과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뇌과학자 정재승(54)이 8년 만에 펴낸 신간 ‘서늘한 대화’는 이 같은 질문에 “아무도 20년 후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고 전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책은 미래를 족집게처럼 짚어주는 예언서나 기술의 명암을 해부하는 해설서가 아니다. 오히려 AI와 구분되는 인간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든 탐구서, 철학책에 가깝다.

책 제목의 ‘서늘함’은 “두려움에 얼어붙지도, 섣부른 낙관에 취하지도 않은 채 아직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미래를 직시하는 마음의 온도”를 뜻한다. AI가 인간의 삶에 들어선 시대, 그는 대학원생, 학부모, 예술가, 기업가, 석학 등과 나눈 대화를 소개하며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며 놓쳐선 안 될 중요한 질문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교육의 미래에 대한 통찰은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AI는 대답의 천재가 되었지만, 아직 질문의 주인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한다. 저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고 낯선 세상에 대해 작은 가설을 세우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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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앗아간 것은 단순히 하루 6시간이라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심심할 자유’와 ‘깊이 생각할 여백’이라는 지적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모르는 것 앞에서 눈빛이 반짝이는 ‘호기심’ 그 자체다. 정답을 잊은 자는 다시 찾으면 되지만, 호기심을 잃은 자는 애초에 아무것도 찾지 않기 때문이다.

일터와 산업의 변화를 짚어내는 시각도 탁월하다. 그는 “인간의 뇌가 가정집 냉장고라면 AI는 지구 크기의 식료품 창고”라고 비유한다. 식재료가 많다고 해서 저절로 훌륭한 요리가 탄생하지 않듯, 무수한 결합 가운데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 가치를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과거의 전문가는 한 분야의 문을 오래 지킨 사람이었다면, AI 시대의 전문가는 중요한 문제를 발견하고 필요한 분야의 문을 차례로 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선 질문 역시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없앨까’가 아닌 ‘내 옆자리에 AI가 앉는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아가 인간이 AI가 내놓은 계산을 언제 신뢰하고 언제 멈춰 세울지 통제하는 ‘메타 판단’ 능력을 잃는 순간, 권한은 잃고 책임만 떠안는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책의 서늘한 시선이 가장 빛을 발하는 지점은 기술의 청구서, ‘AI의 그림자’를 응시할 때다. 흔히 우리는 AI를 ‘클라우드’(구름)라 부르며 그 비용을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이 거대한 구름 이면에는 막대한 전기 요금 고지서와 데이터센터의 땅주인이 존재한다. 기술은 시간을 절약해 주지만, 그 혜택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지는 않는다. AI가 만들어낸 부와 절약된 시간이 노동시간 단축과 공공서비스로 배분될 때, 비로소 기술이 우리의 행복을 넓힐 수 있다는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인 구달, 대니얼 카너먼, 올리버 색스 등 거장들의 목소리를 빌려 저자가 궁극적으로 닿고자 한 기착지는 ‘인간다움’이다. 그는 “AI와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기계를 흉내 내지 않고, 기계가 수집할 수는 있어도 대신 살아낼 수 없는 억양과 흉터를 자기 안에 남기는 일”이라며 “함께 살아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충실히 인간으로 응답했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던진 질문들은 도무지 사용 설명서를 허락하지 않는 복잡하고 불완전한 존재,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읽힌다. 서늘하고도 막막한 질문 앞에 선 이들에게, 이 책은 미래의 문고리를 잡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윤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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