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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홀린 이자람 “하던 대로 한다, 그게 한국적인 것”

입력: ‘26-10-20 22:08 / 수정: ‘26-10-21 01:05

23~24일 ‘눈, 눈, 눈’ 서울 공연

톨스토이의 단편을 판소리로 옮겨
눈보라 소리까지 10여개 역할 소화
아비뇽 페스티벌서 4회 모두 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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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 ‘눈, 눈, 눈’에서 소리꾼 이자람(왼쪽)은 목소리 하나로 레프 톨스토이의 ‘주인과 일꾼’ 속 혹독한 눈보라 현장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펼쳐낸다. 사진은 2025년 공연 장면. LG아트센터 제공


“광활한, 아무것도 없는 무대에 제가 눈보라 속에 조그맣게 서 있는 그림이었어요. 관객조차 ‘어떡하지, 저 사람 저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으면 했거든요.”

소리꾼 이자람(47)은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단편소설 ‘주인과 일꾼’을 읽었을 때 이런 그림을 떠올렸다고 했다. 소설을 판소리로 옮긴 ‘눈, 눈, 눈’은 그의 상상보다 작은 극장에서 출발했다. 지난 7월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으로 오른 오페라극장을 지나 오는 23~24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 홀로 옮겨 가며 상상은 비로소 실물을 얻었다.

‘주인과 일꾼’에서 이윤을 좇아 한겨울 길을 나선 상인 바실리와 일꾼 니키타가 눈보라에 갇히는 하룻밤을 ‘눈, 눈, 눈’에서는 부채 든 이자람과 고수 이준형 둘이 끌고 간다. 이자람은 해설자와 두 인물은 물론 말과 개의 울음, 눈보라 소리까지 10여개 역할을 홀로 오간다.

아비뇽에서는 4회 공연이 모두 매진됐다. 르몽드는 페스티벌 특집판 1면에 그의 사진을 싣고 “판소리의 뜨거운 존재감”으로 집중 조명했다. 인페르노는 “2시간이 넘는 시간에 이자람은 단 한마디도 놓칠 수 없게 관객을 사로잡았다”고 평했다. 아비뇽의 기억을 꺼낸 이자람은 “오페라극장에서 쌓은 경험이 몸에 남아 있다”면서 “그 몸이 커다란 스케치북을 만났을 때 무엇이 튀어나올지 나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자람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과 ‘억척 어멈과 자식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방의 순례자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각각 판소리로 옮겨 ‘사천가’와 ‘억척가’, ‘이방인의 노래’, ‘노인과 바다’를 제작했다. 고전에 마음이 가는 까닭을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에서 찾았다. “판소리는 먼 이야기도 바짝 끌어당기고 감정을 크게 확대한다”면서 “근현대 소설을 담으면 아픔과 사건의 농도가 굉장히 짙어진다. 지금은 무게감과 피로감을 관객에게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연출가들은 주머니에 이야기가 많다는데 제 주머니는 늘 비어 있다”고 했다. 판소리 작창을 염두에 둔 작가나 작품도, 작품을 세계에 알리려는 욕심도 아직은 없다. “그저 하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이 가장 한국적인 일이더라”는 깨달음과 이번 공연에 대한 바람은 분명했다. “그저 제가 맛있게 먹는 이 판소리를 관객도 함께 맛있게 즐겨줬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 잃지 않도록 저는 노력하면서 하던 대로 하겠습니다.”

최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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