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장진영 지음/문학동네/360쪽/1만 8000원
▲ ‘도넛’ 장진영 작가. ⓒ김수원
“도넛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이다. 안에 뭐든 넣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수백, 수천 가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한 연유로 나는 도넛을 사랑했다.” (7쪽)
장진영의 세 번째 장편 ‘도넛’은 이 천진한 예찬으로 문을 연다. 도림이 여의도에 차린 ‘도림도넛’ 앞에는 아침마다 긴 줄이 늘어선다. 가맹점 문의까지 받을 만큼 잘나가지만, 화자는 대뜸 단서를 붙인다. “앞으로 이야기할,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12쪽)
“설탕에 벌레가 꼬이는 건 자연의 이치”(122쪽)이듯 단맛은 사람을 모으지만 탈도 부른다. 사달은 두바이도넛 한 알에서 난다. 비명을 지른 손님의 도넛을 맛본 도림마저 정체 모를 소에 눈물을 쏟는다. 범인을 잡겠다고 벼르는 그가 기대는 사람은 하나뿐인 소꿉친구 조지희다. 직원들을 감싸는 도림에게 친구는 반문한다. “다 너를 싫어해, 도림. 잊었어?”(76쪽) 모진 말을 무덤덤하게 받아넘기는 도림의 모습이 소설이 켜는 첫 경고등이다.
도림의 어린 시절은 상처투성이다. “사탕, 젤리, 초콜릿은 죄악이었다.” (54쪽) 금지된 단맛은 매를 불렀지만 “먹지 않기엔 그것들은 너무… 달았다. 두들겨 맞는 걸 감수할 만큼.” (107쪽) 고자질을 일삼던 조지희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주먹을 휘두르던 엄마를 ‘최나리’라 부르는 것도 상처의 무게를 짐작게 한다. 최나리가 매일 아침 “넌 누구야?” 하고 물으면 “나, 도림”이라고 답하던 다정한 문답(171쪽)은 결말에서 섬뜩하게 돌아온다.
장진영은 평온한 일상 아래 웅크린 불안을 서스펜스로 끌어올려 왔다. 첫 장편 ‘취미는 사생활’에서는 이웃의 삶에 스며드는 ‘나’를 앞세워 집을 향한 욕망을 해부했고, ‘치치새가 사는 숲’에서는 열네 살 소녀와 스무 해 뒤의 ‘나’를 포개어 ‘피해자다움’이란 잣대를 흔들었다. ‘도넛’은 미덥지 않은 1인칭 화자와 상처 입은 유년이라는 작가의 단골 재료를 가장 달콤한 반죽으로 감쌌지만, 씹을수록 쓴맛이 배어난다.
첫 사달이 뜻밖의 방식으로 수습되듯 뒤이은 위기도 도림은 수월하게 빠져나간다. 그러나 마지막 장에 이르면 직원들과 나눈 시시한 농담, 바닷가 휴가, 두근거리던 데이트처럼 무심히 삼킨 장면들이 전혀 다른 맛을 낸다. 누구냐는 형사의 물음에 도림이 내놓는 엉뚱한 대답은 도넛 한가운데 구멍처럼 ‘나’의 자리를 비워 둔 채 끝나는 서늘한 마침표다.
최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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