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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이 어찌 소국 조선을 탐하십니까”

입력: ‘26-10-16 02:57 / 수정: ‘26-10-16 02:57

사대의 역설, 조선이 만든/왕쓰샹 지음/조일수 옮김/너머북스/584쪽/3만 3000원

명, 시문 주고받아 위계 과시
“여진족에 왜 작위 내렸나”
“금·은 조공, 철칙 못 바꿔”
“함주에 군사 기지 두겠다”

조선, 도덕 호소하고 실리 챙겨
“분쟁 막는 고육지책 불가피”
“우리도 모자라, 선황도 거부”
“황제 신하로서 직접 다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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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 태조 주원장(왼쪽)·조선 태조 이성계(오른쪽)


1459년(세조 5년)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도착했다. 조선이 여진 부족 지도자들에게 독자적으로 작위를 내린 일을 문책하기 위해서였다. 조공과 책봉에 관한 기본원칙 혹은 그 시대에 대한 지금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미 명나라의 관직을 받은 이들에게 조선이 별도로 관직을 하사하는 이런 행동은 ‘제후국’이 ‘황제국’의 권위에 정면 도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 명나라는 조선을 문책한다며 사신 진가유를 보냈다.

한중 사이에 발생한 심각한 외교문제는 그 뒤 어떻게 전개됐을까. 접대를 맡은 박원형은 명나라 사신의 이동을 지연시켰다. 세조는 그사이 한양에 머물던 여진 인사들을 북방으로 돌려보냈다. 세조는 “변방의 분쟁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해명하며 황제에게 사죄하고 접촉 중단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조선이 여진을 대하는 방침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조선은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명나라에 순응하면서도 국경 안보를 비롯한 국익과 관련한 사항에 대해선 독자적인 정책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국경 안정을 위해 수만명의 군사를 동원해 두만강을 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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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문서 ‘봉사조선창화시권’. 1450년 명 사신 예겸이 약 1개월간 조선에 머무르며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의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나눈 시문을 모았다. 오른쪽 사진은 대동여지도 중 함경남도 함주, 흥남, 함흥 부분. 1404년 명 관리들이 함주에 군사 전초기지를 두려 했을 때 조선은 “조선이 다스리는 땅 역시 황제의 주권 아래 있다”고 주장했고, 영락제는 계획을 거뒀다. 국립중앙박물관·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


한중관계를 특징짓는 ‘사대’는 일반적으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긴다’는 외교원칙으로 이해된다. 이 때문에 ‘사대’는 흔히 굴욕외교의 상징처럼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왕쓰샹 미국 UCLA 교수는 ‘사대’ 정책을 교조적 신념이나 힘에 대한 종속으로 읽지 않는다. 미국 학계에서 한국학의 토대를 닦고 세계화에 기여한 고 김자현 컬럼비아대 한국학 교수의 제자로 조선 전기 한중관계를 연구해온 저자는 ‘사대’ 관계를 오히려 조선이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외교의 방식, 현실적 조건에 기초해 국익을 지키기 위한 국가전략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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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신과 통역관, 지식인들이 남긴 각종 문서를 통해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다는 사실 뒤에 숨은 ‘외교의 기술’을 찾아낸다. 그 한복판에 시가 있었다. 조선은 1444년 진사시를 폐지했지만, 1450년 명나라 사신 예겸을 맞은 뒤 3년 만에 부활시켰다. 시를 주고받는 일이 중요해지자 명나라도 조선의 기대에 맞는 문인을 사신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책에 따르면 1457년 처음 인쇄된 ‘황화집’은 1633년까지 총 25차례에 걸쳐 산문과 운문 6500편을 남겼다. 황제를 가리키는 글자는 두 칸, 국왕과 사신을 가리키는 글자는 한 칸 올려 쓰는 대두법으로 위계를 드러내면서도 시 안에서는 중국 사신들을 동등한 문화적 동료로 인정했다. 시집은 다음 사신들이 참고할 선례이기도 했다.

이런 준비와 계산은 금·은 조공을 둘러싼 협상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조선은 금과 은을 조공으로 바치는 부담을 덜기 위해 먼저 공식 예복과 제례 용품에 금·은 장식을 쓰지 못하게 했다.

금과 은이 부족하다는 호소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명나라 사신의 눈에 그와 어긋나는 풍경이 보여서는 안 됐다. 상대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반박할지까지 헤아린 조치였다.

1429년 협상에서 명나라 사신은 금·은 조공이 명나라를 세웠던 홍무제가 정한 철칙이므로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의 표문 작성자들은 반박할 논리를 마련해 두었다. 홍무제가 금·은 조공을 거부했던 사례를 찾아내 그것이야말로 선대 황제의 본의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 선례가 홍무제의 정책을 사실상 비튼 것이었다고 짚는다. 그런데도 선덕제는 조선의 “위대한 자를 섬기는 데 지극한 정성”과 “먼 나라 사람들의 사정”을 고려해 요청을 받아들였다. 제국의 규칙을 바꾸기 위해 그들의 역사에서 근거를 구한 셈이다.

조선은 명나라가 스스로 내세운 도덕적 이상을 무기로 삼았다. 황제가 먼 나라 사람까지 차별 없이 돌보는 군주라면 충성스러운 조선을 부당하게 대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1404년 명나라 관리들이 함경도 함주에 군사 전초기지를 두려 했을 때도 조선은 이 논리를 썼다. 조선의 관할권을 역사적으로 입증하면서, 이미 황제의 충성스러운 신하인 조선이 다스리는 땅 역시 황제의 주권 아래 있다고 주장했다. 영락제는 “조선 땅은 이미 내 손에 있는데, 내가 이를 다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계획을 거뒀다. 황제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내정간섭을 막아낸 것이다.

김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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