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자란다/이길보라 지음/문학동네/304쪽/1만8500원
“나에게, 우리에게 경계는 가장자리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가 교차하고 만나며 확장되는 장소이다.”
농인 부모 아래서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란 경험, 타국에서 남들과 다른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해 온 경험을 글과 영화로 표현해 온 이길보라 감독이 이번에는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의 과정을 통과하며 마주한 세상을 소개한다.
어려서부터 ‘비주류’, ‘소수자’, ‘특별함’이라는 수식어로 구분되곤 했던 그의 자리는 ‘경계’라는 단어를 통해 새롭게 의미를 얻는다.
임신과 함께 그는 ‘어떤 세계에서 아이를 키울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던져진다. 코다(농인의 자녀)이자 여성으로서, 일본인 배우자와 다문화 가정을 이룬 그는 새 생명을 품고 기르는 내내 세상으로부터 끊임없는 질문을 받는다.
한국의 의료제도는 마치 ‘장애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면 하루빨리 임신 중지를 해야 한다’고, 장애아를 낳지 않는 방향을 가리키는 듯하다. 과거 이 감독의 할머니는 농인 아들을 낳았다는 이유로 ‘멀쩡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농인인 어머니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출산을 만류당했다. 이 감독 역시 아이를 갖겠다고 했을 때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았고 임신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당연한 수순처럼 기형아검사를 권유받았다. 이런 문제의식은 일본의 구 우생보호법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 재판 과정을 기록한 영화 ‘아워 보디스’(가제)를 제작하면서 더 깊어졌다.
“한국과 일본의 산부인과를 오가며 생각한다. 우생사상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구 우생보호법을 만들고 지속시켜온 우생주의는 지금 나의 몸과 깊숙이 연결된 채 작동하고 있다고.”
출산과 육아의 과정에서도 그는 불편한 시선과 무례한 참견, 그리고 노골적인 배제를 겪어낸다. “저렇게 작은 아기를 데리고 왜 나왔대”, “추울 텐데 양말 좀 신겨라”, “젖양이 부족한 거 아냐?” 등 간섭에 가까운 말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비장애인 성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의 문턱은 아기들에게 한없이 높기만 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장애 아동 보육에 열려 있는 일본 후쿠오카나 핀란드 헬싱키 타넬리 어린이집 사례 등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간이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코다로서 혼란을 느끼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분투했던 그에게 ‘경계’라는 자리는 더 이상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언어와 문화를 물려줌에 있어서 ‘반쪽’이 아니라 ‘더블’이라고 긍정한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손과 표정을 통해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농인 할머니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들이 나에게 평생 간직하고 싶은 다채로운 자산을 물려주었다고. 그리고 그것은 나를 경유하여 이제 막 세상과 만나가는 이 작은 존재에게로 향하고 있다고.”
윤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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