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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영감을 현대 운율로 꽃피운 거장

입력: ‘26-10-08 22:17 / 수정: ‘26-10-09 01:14

2026 노벨문학상 캐나다 시인 앤 카슨

한림원 “고전과 유희적 대화”
장르 넘나들며 독창적 글쓰기
‘에로스…’ ‘빨강의 자서전’ 대표작
여성 첫 T.S.엘리엇상 이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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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한림원은 8일(현지시간) “현대문학을 위한 새로운 형식을 창조했다”며 캐나다 시인 앤 카슨을 2026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AFP 연합뉴스


신화와 현실, 시와 산문, 달콤함과 씁쓸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 쾌락과 고통의 이율배반에서 피어오르는 사랑. 2500년 전 고대 그리스를 현대의 목소리로 되살려낸 캐나다 시인 앤 카슨이 세계문학의 정점에 섰다.

8일(현지시간) 스웨덴 한림원은 2026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카슨을 호명했다. 한림원은 카슨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고전 전통과 유희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현대 문학을 위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2013년 앨리스 먼로 이후 13년 만이다. 여성 수상자로는 2024년 한강을 포함해 역대 19번째다. 카슨은 2001년 시집 ‘남편의 아름다움’으로 여성 최초로 영국 T.S.엘리엇상을 받은 바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카슨에게는 12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6억 1000만원)가 주어진다.

195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카슨은 1981년 토론토대에서 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맥길대, 프린스턴대 등에서 고대 그리스 문학을 가르치며 연구와 창작을 병행했다. 첫 책인 ‘에로스, 달콤씁쓸한’(1986)은 그의 첫 책이자 박사학위 논문을 에세이로 개작한 것이다. 그리스 시인들에게서 나타난 사랑(에로스)의 역학을 분석한 글이다.

“헤라클레스가 자동차 시동을 걸었고 그들은 밤의 뒤안길로 퉁겨져 나아갔다./ 그들은 서로 닿진 않았지만/ 같은 육신 위 평행하게 베어진 두 개의 상처처럼 놀라움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빨강의 자서전’ 중에서)

카슨은 고정된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세계문학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만들어 내며 일찍부터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다. 주요 작품으로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1995), ‘플레인워터’(1995), ‘남편의 아름다움’(2001), ‘녹스’(2010) 등이 있다.

대표작은 ‘빨강의 자서전’(1998)이 꼽힌다. 고대 그리스 시인 스테시코로스의 단편에 나오는 괴물 게리온을 현대의 소년으로 재해석했다. 게리온과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운문의 리듬으로 표현해 국내에는 ‘시로 쓴 소설’이라고도 소개된 바 있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카슨은 신화를 다시 쓰는 작업을 많이 시도했는데, 이를 통해 정상과 비정상을 다시 보게 만들면서 누가 목소리의 권력을 가질 것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면서 “그의 ‘대담함’은 단순히 실험적인 것을 넘어 문학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고 평했다.

오경진 기자·최여경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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