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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척’조차 귀해진 시대… “일상 지탱하는 건 작은 선의”

입력: ‘26-10-08 23:15 / 수정: ‘26-10-09 01:13

우리 착한 나진
이서수 지음/ 민음사
208쪽/ 1만 5000원

인간관계는 절대 단순하지 않아
복수도 용서도 쉽지 않은 이 세계
현실에 발붙인 ‘그냥 같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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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우리 착한 나진’을 펴낸 이서수 작가는 “같이 있으면서 함께 끼니를 챙기는 작은 선의가 우리를 살아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윤기 기자


선행과 선의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착함’과 ‘착한 척’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구분이 과연 중요할까. ‘착함’은커녕 ‘착한 척’조차도 귀해지는 시대다.

소설가 이서수(43)는 오늘날 끝끝내 ‘착함’을 움켜쥐고 있는 한 사람의 초상을 그려낸다. 장편소설 ‘우리 착한 나진’의 주인공 나진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지닌 인물이다. ‘착해야 한다’는 강박과 ‘착해서 무엇하나’는 탄식 사이에서 진동하는 나진의 마음은 ‘착함’이 멸종해 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꽤 울림 있는 통찰을 건넨다. 8일 이서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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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진을 그저 착한 사람으로 설정했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나진에 대해 뭘 안다고.’ 거리를 두기로 했죠. 착하다는 건 ‘너에게’ 좋은 걸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죠. 반면 착한 척은 ‘나에게’ 좋은 걸 먼저 떠올리는 마음인 것 같아요.”

위태로운 회사 생활을 이어가던 직장인 나진에게 어느 날 다혜가 찾아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15년 전 대학생이었던 나진은 다혜의 과외 선생님이었다. 나진은 당시 다혜와 헤어지며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의례적인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진짜 찾아올 줄이야. 어리둥절한 나진을 향해 다혜는 톡 쏘아붙인다. “혹시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고치셨어요?”

“인간관계는 절대 단순하지 않아요. 해석이 잘 안되죠. 관계가 끝났다면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요. 그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잖아요.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죠. 최근 과거를 돌아보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관계에서도 시간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졌죠. 모든 관계는 ‘열려있는’ 것이라고요.”

나진은 다혜가 껄끄럽다. 그것은 비단 다혜가 다짜고짜 나진의 일상에 침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20대 초반, 미숙했던 나진이 애써 묻어 뒀던 죄책감과 부채 의식을 묘하게 되살려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며 독자도 나진과 비슷한 체험을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년이라는 시간. 그러나 15년 전 과거의 나를 과연 오늘의 내가 이해할 수 있는가. 이서수는 다혜를 “성가시고 미묘한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뚜렷한 선악과 통쾌한 복수를 바라는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복수 그리고 회복은 과연 가능할까요. 처음에는 나진을 속인 사기꾼을 잡아서 응징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꾸 걸리더라고요. 현실이 과연 그러한지. 가짜 같았어요.”

이서수는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소설집 ‘그래도 춤을 추세요’, 장편소설 ‘마은의 가게’ 등을 펴냈다.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작가는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에 끌린다고 했다. 소설은 허구임에도 진실을 향해 있다. 작위적인 세계가 아닌 핍진한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 작가의 지향이다. 선악도 분명하지 않고 죄도, 복수도, 용서도 쉽지 않은 세계. 그런 곳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에게는 일상이 지옥이다. 희망은 없을까. 소설의 결말은 작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의 구조가 바뀔 거라는 거창한 기대를 한 적도 있지만, 글쎄요. 일단 ‘그냥 같이’ 있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같이 있으면 서로 ‘밥은 먹었니’, ‘잠은 잘 잤니’와 같은 질문들을 하게 되니까요. 자잘한 일상을 함께 챙기는, 작은 선의(善意)가 그래도 우리를 살아가게 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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