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 있는 빛
마이클 말레이 지음/ 김명남 옮김
에트르/ 316쪽/ 2만 1000원
귀뚜라미 등 관심 못받는 생물 조명
‘이주자’ 인간의 시선으로 소외 포착
먼 곳에서 건너왔다는 이유로 속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서양 깊은 바다를 건너 영국에 흘러온 뱀장어 역시 어느 물길에 닿아 머물며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영국의 영문학자 마이클 말레이 브리스틀대 교수는 유랑하는 뱀장어에게서 오랫동안 자신에게 던져온 질문을 되뇐다. 집이란 어디에 있는가. 한 장소를 사랑하고 그곳에 온전히 뿌리내리는 권리는 누구에게 허락되는가.
자카르타 태생인 저자는 열 살 때 가족과 호주로 이주했고, 스무 살 무렵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영국으로 건너갔다. 여러 국경을 가로지른 이력은 그를 어디서든 유연한 세계 시민으로 만들기보다 ‘집’과 ‘머묾’의 감각에 남달리 예민한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타향의 들풀과 벌레 이름을 하나씩 익히는 일은 낯선 땅에 마음을 붙이기 위한 고독한 싸움이었다. 그러던 중 그 땅에서 소리 없이 지워져가는 존재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책을 이끄는 네 주인공은 뱀장어와 나방, 민물진주조개, 귀뚜라미다. 저자는 이들을 ‘가장자리 종’이라 명명한다. 생태학적 완충지대에 산다는 뜻을 넘어, 인간의 시선과 관심의 중심부에서 밀려났다는 의미다. 대중의 탄성을 자아내는 ‘카리스마 있는 종’과 달리, 이들은 불청객으로 치부되거나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저자가 복원해 내려는 것은 이 생명들의 온전한 자리이자, 보잘것없어 보이는 존재를 기어이 발견해 내는 온정 어린 시선이다.
이주자의 시선은 이 소외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저자는 사람을 한 장소에 뿌리내린 이들과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이들로 나누는 구분에 의문을 품는다. 수천 ㎞를 여행하면서도 한 장소를 사랑하기 힘들었던 까닭이다. 뱀장어는 그 단순한 이분법을 벗어나는 생명이다. 이동하는 존재라고 해서 뿌리내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떠남과 머묾 사이에서 저자는 자신과 다른 생명의 삶을 함께 읽는다.
그렇다고 동물을 인간의 사정을 설명하는 비유로만 삼지 않는다. 저자는 도감을 뒤적이고 논문을 읽으며 연구자와 보존 활동가를 만난다. 나방의 날개에 그어진 선과 작은 점, 제각기 다른 색과 무늬를 살핀다. 민물진주조개가 강물을 여과해 수생 식물과 곤충의 삶을 지탱하는 관계를 배운다. 이에 이름 없는 불청객은 정교한 무늬를 지닌 생명이 되고, 강바닥의 조개는 다른 생물과 관계를 맺는 존재가 된다. 이 통찰은 가엾다는 말보다 그들을 정확히 알아보려는 수고에서 나온다.
책이 상실만을 응시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저자는 집 근처 트루퍼스 힐에서 풀벌레 소리를 듣는다. 채석과 채탄, 제련으로 훼손됐던 언덕에 다시 여러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다. 인간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 울음에서 친구 같은 위안을 얻는다. “나 여기 있어, 나 여기 있어, 나 아직 여기 있어.”
김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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