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자들
리잉디 지음/ 김경숙 옮김
김영사/ 328쪽/ 2만원
“대도시 내집 마련 거액 대출 필요
끝 안 보이는 무서운 궤도 오른 것”
결국 공포 느끼며 소도시로 탈출
패배·포기 아닌 생존 방식 찾기
▲ 과거 중국 충칭 취업 박람회에 몰린 청년 구직자들의 모습.
AFP 연합뉴스
중국 베이징,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의 퇴근길. 몇 대를 보내고서야 겨우 타는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으며 매일 자신을 소모하지만, 발 디딜 곳 하나 마련하기 요원한 현실에 지쳐 스스로 칩거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있다.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저자 리잉디는 ‘탈주자들’을 통해 기성세대가 정의한 ‘성공적인 삶’의 궤도에서 이탈해 헤이룽장성 허강처럼 집값이 저렴한 소도시로 숨어든 청년들의 삶을 추적한다.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은거바’ 커뮤니티에 모인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현실 도피가 아닌,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새로이 개척하려는 청년세대의 치열한 분투기로도 읽힌다.
“대도시에 집을 산다는 것은 종종 수백만 위안에 달하는 거액의 대출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내 집 마련이 인생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중략) 대도시를 동경하는 이상, 끝이 보이지 않는 무서운 궤도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에 등장하는 왕하오와 린원, 왕리는 주류 사회의 부속품이 되기를 거부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집값이 싼 지역에 2만~3만 위안(400~600만원)짜리 집을 사고, 간편식품을 양껏 비축해두고 직장에 다니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는다. 타인과 최소한의 느슨한 관계만 유지하며 고립된 삶을 이어간다.
전 세계 애플 아이폰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거대한 폭스콘 공장에서 일했던 왕하오에게 노동이란 자신의 시간과 감각을 지워버리는 과정이었다. 기계처럼 일하며 낮과 밤의 구분조차 상실했던 그는 결국 정신적 붕괴의 공포를 느끼고 소도시로 탈출한다.
대도시에서 휴대전화 수거회사 고객서비스 업무를 했던 린원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하루 400여건에 달하는 문의에 평균 8~10초 이내에 응답을 해야 했던 그에게 매일 쏟아지는 고객의 질문들은 ‘악성코드’처럼 느껴졌다. 린원은 허강에 집을 구한 뒤 캄캄한 방 안에서 해파리를 바라보며 비로소 타인의 소음에서 벗어난 고요한 자유를 만끽한다.
스스로를 비혼주의자라고 밝힌 왕리는 평생 하루도 쉬지 않고 고생만 한 어머니의 삶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궤도 이탈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모인 이들은 서로의 과거를 캐묻지 않고 언제든 관계가 끊어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은거의 규칙’ 속에서 서로의 동굴을 존중한다.
이들의 모습은 입시, 취업, 결혼, 출산,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는 궤도 앞에 선 한국 청년들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탕핑(아무것도 하지 않고 눕기)을 택하는 중국 청년들처럼 한국에서도 ‘그냥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청년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다. 좁은 취업 문 앞에서 무력감에 빠지거나, 맹목적으로 ‘갓생’(부지런하며 모범적으로 사는 삶)을 좇다 번아웃을 겪고 자발적 고립을 택하는 한국 청년들의 모습은 은거바 청년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두 사회의 시스템이 약속했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신화가 산산조각 난 상황에서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상정한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택한다.
물론 대도시를 떠났다고 해서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쓰러진 후 다시 도시로 돌아온 왕하오, 그리고 끝내 죽음을 택한 왕리의 비극이 보여주듯 그들의 삶은 불안정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선택을 마냥 ‘패배’나 ‘포기’로 치부할 수 없다. 부모 세대가 기대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삶의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부모와 대립하며 입은 상처, 그리고 정해진 삶의 궤적을 따르고 싶지 않은 청년들의 고뇌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의 탈주가 ‘새로운 생존 양식의 모색’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거실과 공간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전한다.
윤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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