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 특별전 전시 작품 검증 결과 발표
독립운동가 박원근 아닌 친일파 박중양 글씨
▲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에서 소개한 ‘일반시국은’ 유묵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4∼1959)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일반시국은’ 유묵. 2026.9.7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이 애국지사 박원근(1912~1950)의 유묵으로 소개한 서예 작품이 같은 이름을 지닌 친일파 인사의 글씨로 드러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7일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에서 소개한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 유묵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4~1959)의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일반시국은’ 유묵은 임진왜란 때 가장 먼저 승병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영규대사(?~1592)가 말한 ‘한 그릇의 밥도 다 나라의 은혜다’라는 뜻을 담은 글귀다. 족자 형태의 유묵 한편에는 ‘한인(韓人) 박원근’이라고 적혀 있다.
박물관은 애초 이 작품을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했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가족이 전시실에서 무릎 꿇고 흐느껴 우는 사진이 공개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개막 한 달여 만인 지난달 10일 ‘박원근’이란 이름이 박중양이 과거에 쓰던 이름이라는 제보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전시에서 철거됐다.
이후 박물관은 서예·근현대사·고문헌·보존과학 분야 전문가 7명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유묵을 검증한 결과 박중양이 일본 유학 시절 남긴 글씨로 판단했다.
박물관은 “‘일반시국은’ 유묵과 박중양의 필적을 대조한 결과, 획 처리 방식에서 유사한 특징이 확인돼 박중양의 필적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작품에 새겨진 인장도 박중양과 관련이 있었다. 머리 부분에 찍는 두인(頭印)에는 1932년 말 서예가 김태석(1874~1951)이 박중양에게 새겨 준 것으로 알려진 인장 문구와 일치하는 내용이 확인됐다.
박물관은 “유묵에 쓰인 ‘한인’이라는 표현은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 유학 간 학생이나 방문자들이 주로 쓰던 말”이라며 “박원근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에 머문 기록이 없지만, 박중양은 대한제국기인 1896년부터 1903년까지 일본에 유학 간 인물로, ‘한인’이라는 표현을 쓴 시기, 정황과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일반시국은’ 유묵과 비슷한 서체와 도장이 남은 작품도 여럿 확인됐다. 일본 등 해외 경매 사이트에 공개된 서예 작품 중에는 ‘박원근’이란 이름으로 된 글씨가 있었으며, 이 중에는 일본인에게 써 준 작품도 있었다.
박물관은 “지하 조직 활동 등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박원근이 해외에 유통될 만큼 여러 점의 서예 유묵을 남기고 일본인을 위해 썼다는 것은 그의 삶의 궤적과 거리가 있다”며 “이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유묵임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전 검증을 강화하고 근현대사 분야 내외부 전문가 풀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유홍준 관장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은 박물관이 국민 앞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 이에 대해 미흡했다”며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송구한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 전시품 검증 절차를 더욱 강화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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